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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비오는 날 땡기는 음식(Feat. TPO에 맞는 메뉴 선정)

올 여름은 정말 입맛이 왜이렇게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손에 꼽힐 정도로 식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데요. 식욕이 없어지니 간이 심심해도 괜찮았고, 조미료보단 자연 건강식으로 나름(!) 소식을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날이 풀려서일까요? 올 여름 동안 잃어버린 입맛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식욕을 넘어서 다시 식탐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가을이 온 것을 제 몸도 알고 있는 듯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할 때 TPO에 맞는 옷을 입으라고 하죠! Time, Place, Occasion의 약자로 시간, 장소, 경우에 따라 입으란 이야긴데 왜 그게 옷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먹는 행복을 아는 배운자라면 음식을 먹을 때 TPO에 맞는 메뉴 선정도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할 수 있을텐데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음식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오늘은 오늘의 날씨에 맞게 비오는 날에 어울리는 음식을 한번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음식은 지금 제가 제일 먹고 싶은 마라탕입니다. 비오는 날은 역시 국물요리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마라탕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사실은 저도 마라탕을 예전에 경험해보긴 했는데 제가 처음 경험했던 마라탕은 메뉴판부터 중국말로 뒤덮인 중국인분이 하시는 리얼 중국집이었는데 마라탕의 향신료가 화장품 맛처럼 너무 강해서 혀가 얼얼하다 못해 마비가 되는 강력한 맛이었습니다. 자극의 끝판왕 같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에 마라탕을 선뜻 먹지 못했는데 마라탕 열풍이 불었을때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향신료에 강한 나도 놀란 맛인데 어떻게 대중의 맛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호기심에 다시 마라탕을 도전해봤고 요즘 우리가 대중적으로 접하는 마라탕은 그때와 달리 자극적이지만 왜 좋아하는지 납득이 될만한 맛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심심하면 마라탕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라탕과 어울리는 음식으로 보통 꿔바로우를 많이 드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지삼선도 추천합니다:) 지삼선은 땅에서 나는 3가지 채소(가지, 감자, 피망)를 볶은 요리로 달고 짭쪼름한 것이 채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입니다.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도전해보았는데 그 이후로 마라탕 시킬 때 지삼선도 함께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지삼선을 경험해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기대보다 맛있어서 후회없을 요리이니 한번 경험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그리고 비오는 날 빠지면 안될 음식으로는 전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전인 김치전을 대표로 추천합니다. 비오는 날 왜 전이 땡길까에 대한 고민은 초딩 시절부터 이어져 왔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내린 답은 비오는 소리와 전을 부칠 때 기름 끓는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다녀와서 키가 클려고 그랬는지 낮잠을 밤잠처럼 자고 있었습니다. 자다가 살짝 깼는데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시는지 주방에서 인기척이 났고 전 부치는 기름 소리가 들려서 잠결에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전을 먹는 것인가, 빨리 먹고 싶다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때 뭔가 이상해서 일어나 확인해보니... 전 부치는 소리가 아니라 빗소리였던 것이었습니다ㅠㅠ 그때 깨달았습니다. 비오는 날 전이 생각날 수 밖에 없구나 하고 말이죠. 


전과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말해 뭐하겠습니까. 바로 막걸리죠. 물론 국물 요리도 잘 어울리지만 국물은 없어도 막걸리가 빠지면 섭섭한 것이 바로 전과의 궁합 아니겠습니까? 막걸리는 역시 찌그러진 양은사발에 먹어야 제맛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20대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술은 막걸리였습니다. 지금은 기분 좋게 마시는 정도로 맥주나 와인을 선호하지만 왜 그렇게 저의 20대엔 막걸리를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소주를 나보다 잘마시는 친구도 막걸리로 저를 이기지 못했는데 막걸리 마시고 다들 괴로워할때 저는 크게 후유증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창 센척 하느라고 기억을 조금 조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비오늘 날에 전과 막걸리의 감성은 날씨의 감성을 넘어 오래된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천 드리는 김치수제비! 사실 비오는 날 빠지면 섭섭한 음식이 한두가지는 아니지만 김치수제비는 비오는 날 먹으라고 만든 음식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제가 비오는 날 추천 드리는 음식이 어쩌다보니 모두 빨갛고 뜨끈한 음식인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맵고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비오는 날에도 얼큰하고 진하고 따끈한 음식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귀찮은데 수제비나 해먹을까? 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이 수제비가 아닐까요? 무심한듯 반죽을 툭툭 던져 울퉁불퉁하게 대충 만들어도 그대로의 맛과 낭만이 있는 요리! 쫄깃한 수제비가 질릴 때쯤 고소하게 익은 부드러운 감자가 달래주니 질릴 틈도 없이 한그룩 뚝딱 할 수 있는 음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