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질적으로 성격이 급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뒤늦게 깨달았지만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책임감이 강한 면도 있어서 뭔가 항상 바쁘고,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성격은 급한데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고 한 번씩 집요하게 완벽주의적인 기질도 있어서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 신속하게 일을 해치울 수 있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처리할 수 있고, 결정내릴 수 있는 일은 지체없이 해치우고 마음 편하게 다른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 저의 스타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급한 성격 탓인지 저는 주로 의견을 먼저 내는 사람, 결정을 내리지 못할때 대신 결정을 하는 사람의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문제라도 말이죠. 가령 점심 메뉴를 정하거나, 모임 장소를 정하거나, 대부분 시작의 운을 띄우는 일은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 피해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는 바쁜데 항상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을까? 왜 다른 사람들은 공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넋놓고 있을까? 혹시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만 맞춰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아무도 먼저 하지 않지...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고, 간혹 남들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편하게 본인의 실속을 차리는데 나는 자처해서 이용 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심해졌습니다.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의 업무 환경에서 저는 실속 없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처럼 스스로 느껴졌고, 저의 사적인 시간조차 점점 빼앗기고 의무감만 남으면서 당연하듯 저에게 물어보는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시작은 아무도 부탁한 일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말입니다.
그 후로 직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에선 최대한 신경을 끄는 쪽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그동안의 경험에 대한 상처와 오해를 간직한 채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사소한 것에서부터 문제는 결국 반복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점심메이트였던 일행 중에 제가 회사를 오래 다녔고, 나이도 제일 많았고 그 친구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스타일 보단 남에게 맞춰주고 배려해주는 면이 강했으며 평균보다 느긋한 성향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기준에서는 속을 알 수 없고 느리고 답답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일하는 층이 달라지고 자리도 떨어져 있어서 메신저로 대화 후에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모여야 하는 환경이었는데 운을 띄우는 것도, 정하는 것도 점점 저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회사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많은데 왜 또 이런 사소한 식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하는 마음도 생겼고, 같이 먹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과거에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들이 다시 사소한 듯 보이는 것으로부터 되풀이 되기 시작했고 모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은 아닌지, 혼자 오해 속에서 상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퇴사 후에도 이어진 그 친구들과의 대화와 만남 속에서 오해가 쉽게 풀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성향과 의무감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모두 놀라며 제가 그동안 했던 역할들은 제가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리더 성향인 것 같아서 존중하고 따라갔던 것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오해를 풀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혼자 생각에 갇혀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된 만남 속에 여행도 함께 가게 되었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배려하고 맞춰가는 모습 속에서도 각자 보이는 신념과 개성을 보면서 크게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생각을 가진 지 알아갈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까지 더 기다려주지 못한 걸까? 내가 만약에 이 친구들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지 않았다면 이후에 또 똑같은 문제를 어리석게 반복해서 부딪치고 있었을까? 정말 부끄러운 마음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느린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좋고 나쁜 것이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나를 반대로 바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각자의 기질에 따라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만약에 저와 같이 확실하고 솔직한 성향의 급한 면을 가지고 있다면 본인의 속도로 기준을 세워서 차분하고 배려하는 성향의 사람을 무조건 느리고 답답한 성격의 문제처럼 여기기 전에 열린 마음으로 한 번 이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금은 나의 속도를 늦춰서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는 성급하고 경솔해서 평소에 실수하거나 놓치는 것이 많다면 나와 반대의 성향에서 오히려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게으르고 자기 할 몫을 제 시간에 하지 못하고 미루는 것을 단지 스스로 느린 성향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속도를 맞추고 배려하는 것, 뒤늦게 선물 받은 큰 깨달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