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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박사/스토리

아프리카의 빵셔틀, 치타의 속사정

제가 치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에버랜드에서 실물로 치타를 가까이 보게 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로스트밸리에서 치타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만, 꽤 지난 이야기이지만 좁은 유리실 안에 계속 돌아다니던 치타를 코 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정형행동을 보이는 모습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황홀하리만큼 너무나 멋진 치타의 실물 피지컬에 놀라서 넋을 잃고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야생에도 모델이란 직업이 존재한다면 치타가 그 자리를 독차지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할만한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편하게 말하자면 정말 간지난다! 잘빠졌다! 이런 표현이 저절로 나옵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치타는 지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꾼으로 유명합니다. 최고 시속 110km의 속도로 포유류 중에서 단거리를 가장 빨리 달리며 이러한 장점으로 사냥성공률 1위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사자의 순간 최고 시속이 65km, 사람의 경우 35km인데 이와 비교해보았을 때도 단연 치타의 월등한 달리기 속도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높은 심폐호흡량과 척추 주위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근육량으로 척추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갑자기 방향을 틀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긴 꼬리는 몸의 밸런스를 맞추도록 도와주며 이러한 유연하고 날렵한 신체적 특징으로 언제든 월등하게 선두를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동물의 세계에서 치타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달리기' 이것 하나 뿐인듯 합니다. 치타에겐 너무나 치명적인 약점이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폭팔적인 스피드를 자랑하지만 30초 안에 사냥이 성공인지 실패인지에 대해 결판을 보지 않으면 몸에 과도한 무리가 가면서 근육에 경련이 오거나 뇌의 열이 순간적으로 급상승하면서 생명에 무리를 주게 됩니다. 치타는 맹수라는 수식이 민망할 정도로 체력이 좋지 않아 지구력에 있어서도 매우 취약하고 작은 얼굴과 이빨을 가진 불리한 신체적 조건으로 다른 맹수들처럼 강력한 턱과 이빨로 치명타를 주지 못하여 힘들게 사냥한 먹이마저 하이에나와 사자,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에게 뺏기기 일쑤입니다. 



주로 이들이 다니지 않는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사냥을 하지만 그럼에도 치타가 사냥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냥감을 채 가는 사자와 하이에나 등의 양아치 짓은 피하기 쉽지 않고 치타에겐 그들 무리를 당해낼 힘 또한 없으므로 포기하고 다시 사냥을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치타는 사냥을 할 때 모든 힘을 다 쏟아붓기 때문에 하루에 1,2번 그 이상 사냥을 시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굶어죽는 치타 새끼들도 많다고 합니다. 치타의 육아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의 생존 이야기는 더 고달프게 느껴집니다. 



치타는 새끼에게 매우 헌신적인 동물입니다. 암컷은 평균 3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새끼가 다 클 때까지 2년 정도 혼자서 독박육아를 하게 됩니다. 치타 어미는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은신처에 새끼들의 냄새가 짙어지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새로운 둥지를 찾아 새끼를 하나 하나 입으로 부드럽게 물어서 옮겨 다녀야만 하고 혹독한 생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미 자신과 새끼들을 먹일 충분한 먹이를 사냥하러 매일 나서야만 합니다. 어미가 사냥을 떠나는 동안 둥지에 남은 새끼들은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되지만 새끼들을 돌보기 위해서 어미도 힘을 내야 하고, 새끼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야생의 세계가 원래 그렇지만 치타 어미는 너무나 바쁘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략 6주가 지나면 먹이를 찾으러 갈 때 새끼들도 어미를 따라 나서지만 태어나서 첫 3개월 동안 치타 새끼들은 최고의 사망률을 보이며 10% 이하만 생존하게 됩니다. 어미 치타는 연약하고 순진무구한 새끼들이 포식자들에게 잡히지 않도록 계속 경계를 하면서 사냥을 나서지만 결국 사자나 하이에나와 같은 강한 포식자들이나 질병으로 인해 대다수가 죽게 됩니다. 치타가 생존하기엔 너무나 많은 위험과 도전들이 가혹하게도 끊임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사실 치타는 다른 맹수들에 비해 성격 또한 덜 사납고 온순한 편이며 인간에게 친화적으로 여겨지고 있어 고대 왕실에서부터 우아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사육되기도 했고, 큰 집고양이 또는 개와 같은 성격으로 아프리카나 중동의 부호들이 애완용으로 많이 키우기도 합니다. 동물원에서의 치타의 수명은 평균 12년이라면 야생에서의 평균 수명은 7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들의 생존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00년대 10만 마리였던 치타의 개체수가 현재 대략 7천 마리로 급격히 줄어 현재 1급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다른 맹수와 생존 경쟁에서 서럽게 죽는 경우도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된 원인은 사실 인간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발과 밀렵으로 인해 치타가 사는 서식지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원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줄여 사자나 하이에나의 사냥터도 확장 되고 치타도 더 넓어진 야생 환경에서 자유롭게 사냥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저 달리기가 빨랐던 전설의 동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열악한 생존 환경에 인간들도 더 위기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얼굴에 새겨진 검은 무늬가 더욱 슬픈 눈물자국으로 보이지 않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