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개가 꼬리를 흔들고 저를 반기는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삶 속에 전원생활과 그 안에서 함께하는 개를 떠올립니다. 이렇듯 개는 인간에게 가장 친밀하며 오랜 역사를 거슬러서 깊은 유대관계를 이어온 특별한 동물입니다. 충성심의 상징이자 인간의 친구라고 불리는 개는 대체 어떤 계기로 인간과 함께 하게 됐고, 그리고 인간의 속에서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요?
학계 내 의견이 다양하지만 인간과 개가 함께하기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빙하시대가 지난 이후, 빨라도 1만 6천년 전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견된 고대의 타이미르 늑대 뼈에 대한 DNA 분석 결과 3만 5천년 전 북부 시베리아를 떠돌던 늑대가 현재의 늑대와 개의 가장 최근 공통조상을 대표하며 유독 현재의 시베리아 허스키와 그린랜드 썰매개가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개와 인간의 관계는 2만 7천년~4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도 원래 늑대처럼 집단으로 사회를 형성하였고 이것이 인간의 집단 사회와 잘 맞아 떨어져서 지금에까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과 개의 관계의 시작은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친화력이 있는 늑대들이 사냥을 하는 인간들 주위를 배회하며 남겨진 동물 찌꺼기를 먹으며 살아가다가 자발적으로 가축화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는 인간들이 늑대 새끼들을 기르며 가축화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정확한 시작의 계보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이 개를 이용하게 된 것은 사냥이 목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개에게 인간들이 안전한 안식처와 식량을 제공하고, 인간은 개로부터 인간의 영역을 보호받고, 사냥에 도움을 받으며 공생의 관계로 시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 개는 단순한 사냥용을 넘어서 부유한 집의 경호원, 로마시대에는 우편집배원이 되기도 했다가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문명이 발전하여 더이상 개들의 신체적 능력으로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졌지만 인간과 오랜 세월 함께한 개와 공생의 관계를 넘어서 이제 친구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개와 인간은 단순히 친구의 관계를 넘어 오랫동안 생활의 상당 부분과 음식도 함께 공유를 하며 길들여졌습니다. 이러한 개와 인간 사이의 유사성을 분석하기 위해 장내 미생물을 분석한 결과 개의 장내 미생물은 인간과 매우 유사했고, 개의 장내 미생물 목록 중 32.9%는 돼지, 19.9%는 생쥐의 미생물 목록에 포함된 것과 비교해서도 63%는 인간의 미생물 목록에 포함되며 인간과 생각보다 훨씬 큰 유사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개는 오랜세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며 음식 또한 함께 해왔기 때문에 몸 속 깊숙한 부분까지 닮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개가 인간과의 공생으로 인해 변화한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개들만의 뛰어난 사회성의 비밀은 유전적 특징으로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 가진 장애 중 하나인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줄여서 WBS)과 염색체의 유사성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WBS란 사이코패스나 자폐증과 반대된다고 말하는 장애로 낯선 사람에게도 낯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친절함을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장애입니다. 개와 늑대의 유전은 99.9% 유사성을 보이지만 개의 일부 유전자에서 변형이 이루어져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변형이 개들의 친사회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고 있고, 이 유전자 변형이 인간에게 이루질 시 WBS가 된다는 것입니다. 개가 인간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이어온 것은 이렇게 유전자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고 오랜 세월 공생관계를 통해 개가 외형과 행동 뿐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진화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가지 특성으로도 알 수 있듯이 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주인과 개가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할 때 옥시토신 분비량이 증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옥시토신은 행복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이렇게 주인에게는 한 없이 사교적이고 애교 만점이지만 자신의 주인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바로 적대적으로 변하며 경계심을 가지고 주인을 보호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개는 인간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동물입니다. 그러니 개를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면 단순히 귀여운 마음에서 가볍게 키우는 것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서 함께 동반자로 살아간다는 책임감을 충분히 가지고 사랑으로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에게 버림받고 학대 당하는 개들이 줄어들테니까요.